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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순휘
작성일 2006-09-28 (목) 11:11
분 류 탐방기
   
중국 항일투쟁 전적지를 다녀와서
제목 없음

지난 8.7-13일 기간중 초대 국방장관을 지내신 철기 이범석 장군님의 항일 무장독립 투쟁을 추모하기위한 답사 할 기회가 있어서 생애 최초로 간도지방을 방문하였다. 방문의 목적이 단순히 관광차원이 아니라 일제하에 조국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호국선열의 발자취를 탐구하는 바가 주된 방문이유이므로 탐사단의 분위기는 사뭇 비장하기도 했다.

  탐사단의 구성은 전국에서 지원한 대학생 50여명과 교수 및 애국단체장으로 구성된 지원단으로 전체 70여명 정도가 출발하였다. 인천항을 출발하여 뱃길로 16시간을 가니 신의주 건너편의 단동항에 다음날 아침 도착할 수 있었다. 단동지구는 한 

국 기업자본이 투자되면서 70년대의 낙후성을 벗어나서 도시 전체가 새로 건설되는듯 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단동을 지나다가 압록강변 휴게소에서 저 멀리 압록강 철교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말없이 흐르고 있는 압록강 건너편으로 북한 주민주거지역이 보였고, 남루한 기와지붕의 주택가 사이로 몇 명의 주민의 모습도 보였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지만 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유 번영과 억압 피폐의 경계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압록강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다음날 8월 8일 독립군의 군간부를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소위 서간도(西間道)라고 하던 퉁화시 광준현 광명진으로 향했다. 신흥학교는 1910년  신흥강습소로 개소되어 독립전쟁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던 곳으로 이범석장군은 연성대장으로 근무하였고, 1920년 10월 22일 독립군 사관생도대  600여명을 진두지휘하여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에 참가하기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그 곳에 있던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독립군을 지휘하던 간부양성소는 사라졌고 옥수수밭으로 변해있었는데 보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중국주민에 의해서 구전되고 있었다.
 

8월9일에는 버스로 이동하여 집안으로가서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흔히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 화보로 보던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그리고 장수왕의 묘인 장군총을 직접 보면서 한 시대의 위대한 영웅이 존재했음을 생각했고, 이 위대한 조상님의 뒤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후손의 자괴감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시 야간에는 침대기차를 타고 밤새가서 8월10일 아침에 도착한 곳은 길림성으로서 소위 북간도지방으로 이동한 것이다. 8시간을 타고 달려서 도착한 통화시 백하역은 우리의 시골역같은 분위기였다. 역전의 표지판부터 우리 한글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점이 조선족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만주땅이 광대하다는 것은 침대차로 자면서 가도 다음날도 계속 달리고 있다는 상황을 읽으며 그 옛날 고구려 강토시대에 말달렸을 조상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쉬웠다.
(어이하여 이 땅이 남의 나라가 되어 손님이 되어 와야하는 것일까?)

다시 버스는 백두산 답사를 위해 달렸고, 드디어 백두산 입구에 와보니 백두산은 온데 간데없고 중국놈들이 자기네 것 인냥 "장백산"이라고 온통 표기해 놓고, 소위 <동북공정>인가 <동북사기>인가하는 지꺼리를 씁쓸히 보면서 등정해야만 했다.
(아! 이런 일이 대명천지에 자행돼도 국가적으로 제대로 항의도 안되고 있다니....)

백두산입구까지는 버스로 가고, 거기서는 중국 광관사가 직접운영하는 코란도식의 차량에 4인씩 분승해서 약 20분간을 백두산 산밑까지 올라야했다. 올라가는 길은 지그재그 길로서 총알택시개념으로 올라가는 데 옆을 보면 낭떠러지라서 순간순간 아찔아찔하기도 했다. (암튼 걸어 올라가면 5시간인가 한다니 그럴 수는 없지않소...)
 백두산 산밑까지 편안히 올라오면 바로 눈앞에 백두산 꼭대기가 보이고, 10분 정도 올라가면 천지가 보이는 정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그날 올라간 곳은 중국령에서 북쪽인 백두산 16개 봉우리 가운데 천문봉이라는 세 번째 높은 봉우리였다.
걸어오르다가 처음으로 본 것이 장백폭포가 흐르는 달문계곡의 능선인데 그 장엄함에 그만 발걸음이 멈춰지면서 그만 입이 닫혀지질 않았다. 바로 이순간이 내 생애 최초의 백두산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2006년 8월 10일 10시 정각! 역시 백두산의 영험한 기상에 이미 나는 압도되고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이 역시 백두산이 왜 백두산인가를 느끼며 온몸으로 전율을 실감하였다.
 과연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에 틀림없었다. 백두산과의 일생일대의 첫 만남은 말로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의 순간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던 천지를 보는 순간도 아마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한 눈에 안들어 오는 커다란 칼데라호수인 천지는 역시 그 크기도 대단한 산꼭대기의 대호수였다.

그 옛날 단군께서 3사를 데리고 신시를 열었다는 전설을 말하려는지 순식간에 백두산의 기상은 변화하였고, 바람(風師)이 구름(雲師)을 몰고 와서는 비(雨師)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한 10분간 비가 뿌리더니 잠시 후엔 다시 맑게 변하는 날씨의 조화는 신비하기까지 했다
참 영산(靈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천지조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하산한 후에는 장백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이동했고, 입구에서 하산하여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폭포를 바라보니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듯 했다.
이 곳을 오르려는 것은 천지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등산 코스인데 그 오르는 길이 중국에서 계단작업을 해놔서 무려 2천 계단이상이라니 엄청난 거리라고 봐야했다. 하지만 일생의 첫 기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주고 올라가는 길은 정말 힘든 정도가 아니라 올라가다가 세 번이나 쉬어야하는 험난한 계단길이였다.
장백폭포의 장관을 옆으로 감상하면서 계속 올라 드디어 천지를 볼 수 있었고, 손을 담그고 발을 담그니 이게 꿈이런가 생시런가. 잠시후 중국 공안은 나보고 나오라했다.
(그래...발이 시려워 1분이상 있기도 어려운데...에라.. 나가주마)

백두산을 뒤로하고 용정으로 향하는 길은 또 남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평소에 나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애국시인이며, 항일 저항시인인 윤동주님의 학교와 생가를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정의 대성중학교 교정에 들어서니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가 시비로 제작되어 서있었다.

시인은 죽었어도 시는 남아서 위대한 시혼을 만대에 전하고 있는 현장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끼며 일행과 함께 유물전시관도 돌아보면서 유작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한 권 구매하였다.
그리고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시인(1917.12.30~1945.2.16)의 생가를 가서 보니 왜 그가 그런 시를 써야했던가, 왜 그런 시가 나왔는가하는 평소의 의문이 풀리었고, 그의 생가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시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졸저 제1시집<부동항/1982년>에서 윤동주 시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던 바가 있어 남다른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평론을 중심으로 버스에 동승하여 이동하던 대학생들에게 윤동주시인님의 시를 설명해 주어 이해를 도왔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청산리전투가 있었던 백운평계곡 입구였다.

   대리석으로 세워져있는 청산리대첩 전승기념비를 대하니 거듭 마음이 숙연해지고, 일제 정규군을 상대로 청사에 빛나는 대승을 거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놀라운 것이였다.
백운평계곡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옛날 이곳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왜놈을 기다리고 총을 쏴 격멸했던 독립군의 총성과 함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오늘의 조국이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었음을 국민이 잊으면 안되는데...)
참배를 마치고 일행은 주변에 대한 정화 작업을 실시하여 각종 오물을 청소했다.
 

8월12일에는 <항일 독립투쟁 한중 대학생 세미나>가 실시되는 연변대학교로 갔다.
연변대학은 연변시내에 위치해 있었는데 김문일 전총장은 연변대의 존재 가치를"역사를 위해, 역사를 기리기 위해,500만 동포를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위해 필요한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이 세미나에서 발표자나 토론자나 모두 어려운 당시의 여건을 극복하고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철기 이범석 장군님의 역사적 평가와 조명을 다시 했고,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오늘날 계승 발전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의 대학생들도 조상들의 위대한 항일무장독립투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분석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근대사를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우리군의 정통성과 명예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의 흥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재인식하게 되었고, 과거사지만 구한말시대에 국가의 패망을 결코 바라만보지 않았다는 역사적 고증을 스스로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각별히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서 피상적이나마 중국사회를 볼 수 있었으며, 동북공정의 현장을 찾아 고구려 유적속에서 조상의 위대한 흔적을 발견했고, 항일무장독립투쟁 세미나를 하면서 위대했던 투쟁의 역사를 확인했다. 특히 우리의 산 백두산의 등정은 일생동안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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