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논문/기행문
작성자 김남석
작성일 2006-09-25 (월) 00:43
분 류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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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쪽에서 백두산을 오르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단군의 후예는 누구나 한번 백두산을 올라보기 원 한다. 원하는 백두산을 백의민족이 살고 있는 우리 땅에서 오르지 못하고, 나는 중국 연변 쪽에서  오른다.  백두산白頭山은 중국인들은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른다. 산의 머리가 희다는 표현을 한 백두산의 한문자 표현이이나, 늘 흰 산이라고 표기 해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나 그 한문 단어의 뜻은 같은 공통점이 있다.

중국말을 하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오르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한국인들 같다. 주로 한국의 관광객으로 이루어지는 백두산의 관광을 위해 서틀 버스운행 구간을 지나, 산악으로 오르는 짚 차 운행구간은 차량을 타고 중국 쪽 천문봉天文峰 턱 밑까지 차로 올라, 바라보이는 거리를 누구나 오를 수 있도록 한 코스 이다. 단화를 신고 가도 충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도로가 개설이 되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회손 되었다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상에 으르니 빗 낱이 떨어지더니 천지는 거치는 안개 속에 보이나, 주변 산 봉오리는 구름에 숨겨졌다.

청나라의 조상이 장백산에서 나왔다고 하여 현재의 중국에서도 신성시한다고 한다. 천수운봉 중화명산 天水雲峰 中華名山이란 한문자 표어가 관광객 눈에 잘 보이도록 지나온 도로변에 계시되어 있었다. 20억 톤의 물이 저장되어 있는 천지 9. 82 평방키로 주변 산 봉오리 16개 중에 중국 쪽에는 6개가 있고, 10개의 봉은 북한 쪽에 속했다고 한다. 제일 높은 장군봉은將軍峰은 우리의 땅이나 천지天池 너머 멀리 구름 속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국권을 상실 했을 때 일본과 청나라가 간도 협약을 맺어 간도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했으므로 우리 백성이 대부분 살고 있는 간도가 중국 땅이 되었고, 6. 25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정권을 유지한 북쪽은 저들의 요구에 응 할 수밖에 없어 백두산이 두 나라의 경계봉오리가 된 것이다.

백두산 정상에서 나려와 중식을 하고, 송하강의松花江 원류 68m의 낙차로 장대함을 자랑하는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옆으로 끼고 올라 콘크리트로 만든 통로 달문을 통해 1.990계단을 밟으며, 다시 천지로 향했다.  고희를 넘은 나이에도 천지에 간다는 희망으로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장백폭포 위에 광활하게 자리한 천지에 이르렀다. 오전에 천문봉에서는 안개거치는 천지 밖에 볼 수 없었으나, 천지에 손을 담그고 구름에서 나온 주변 산봉우리를 전부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의 장군봉이 선명하게 마주 보인다.

백두산의 기후 변화는 예측 할 수 없다고 하더니, 언제 구름이 왔는지 소낙비가 쏘다진다. 잔잔한 천지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는 중국을 거쳐 천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우리 일행의 마음의 눈물인가? 그 비도 잠깐이고, 언제인가 햇볕이 쏘다진다. 광복청년 아카데미 지원단의 성악가 임익선 박사가 순간적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우렁차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니 천지에 오른 모든 관광객이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중국의 공안원은 우리의 애국가인 줄 알고 치는지 그도 우렁찬 노래에 박수로 답한다.

백두산에 한 번 와 천지와 주변 산 봉오리를 다 보는 분은 복 받은 분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빗 낱이 떨어지는 날에 와서 안개 거치는 천지, 구름에 잠긴 주변 산 봉오리, 구름 속에서 나온 웅장한 장군봉, 비 맞는 천지를 하루에 다 보고, 우렁찬 애국가를 중국 쪽 천지에서 들었다.

패드 물병에 천지 물을 담았다. 이 천지 물을 집에 돌아와 향기로운 한난 꽃을 피우는 난에 백두산 천지의 성스러운 고운 물이라고 이르며 골고루 잎에 뿌려 주었다.

우리 땅에서 난 사람을 누구나 천하의 명산 금강산과 민족의 발상지 백두산, 남쪽에 우뚝 솟은 한라산을 골고루 다녀 보고 싶어 한다. 그 백두산을 왜 중국의 영토를 거쳐 가야만 하는가. 연변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도로개설과 편의 관광시설을 우리의 관광객이 지불하는 돈으로 했으리라. 금강산을 인두세 내듯 고액으로 관광하는 것도 문제 이지만, 백두산을 평범한 대한민국 백성이 같은 땅 한반도 내에서 오르지 못하는 것도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정치꾼들의 술수 때문이 아닌가.

백두산의 남쪽 산록도 흰 색을 나타내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수 없이 많다는 글을 읽었다. 연변 쪽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서틀 버스 통로의 양 길 옆에도 수 없는 자작나무 군락지를 볼 수 있었다. 고 조선시대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남북이 다 우리의 조상들이 살든 곳인데, 중국의 동북 공정 운운하며, 백두산 주변도 자기들의 지방 정권이 있었다는 식의 발상으로 영토의 욕심을 내는 것은 가히 가관이다.

티베트를 점령해 자기들의 영토로 확장한 저들은 백두산마저 저들의 산이라고 할 것인가. 중궁에 감사해 백두산 영봉 일부도 중국에 활해한 정권을 이은자는 과연 민족의 영산을 지킬 능력이 있는 가.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산정 가까이 까지 차도를 낸 장백산을 갔다 온 나의 부질없는 안타까움이다.    

단군신화가 서린 백두산을 다녀온 자의 긍지보다 못 볼 것을 보고 들은 양 개운하지 않는 마음은 언제 까지 갈 것인가. 더 이상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욕심의 화신인 인간이 회손 하지 말라.

백두산이여~ 영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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