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논문/기행문
작성자 김남석
작성일 2006-09-25 (월) 00:53
분 류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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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민족의 어휘가 가슴에 스며진 곳을 여행하며

압록강 하구 중국 단동丹東에서 북한으로 연결된 철교를 보고 우리 민족이 자유롭게 오갈 날을 기원했다. 그리고 도문에서 북한으로 연결된 다리와 훈춘 방천 삼국 접경지에서 북한에서 러시아로 연결된 적막한 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망국의 한을 담고 이시영 씨가 설립했던 신흥무관학교가 있던 곳이 옥수수 밭이 되었고, 그 곳에 있는 가옥이 고려관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 성벽의 잔해 200여 m 만이 아파트촌의 한쪽에 쓸쓸이 남아 있는 것을 아린 마음으로 보아야 했다. 압록강 건너 북쪽 만포제련소의 외로운 굴뚝에서 지친 모습으로 솟는 연기도 보았다. 우산禹山을 진산으로 강을 앞에 두고 있는 웅대한 광개토 대왕 비碑와 능陵, 동양의 금자탑 유물인 장수왕 능陵의 웅장한 모습이 다른 나라의 정치 영역 안에 있어 후손인 우리 손으로 가꾸고 보전하지 못함을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우리 땅으로 오르지 못하고 중국 쪽에서 오를 수  밖에 없음을 한탄하며 올랐다. 국경을 넘어 삶을 개척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은 경계를 넘어 산다고 과경민족跨境民族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동족이 많이 거주하는 화용和龍, 용정龍井, 연길延吉, 도문圖們, 훈춘을 뒤로하고,  흑용강성黑龍江省 목단강牧丹江 발해渤海의  마지막 왕의 고혼이 잠들었다는 경박호鏡泊湖를 향해 차가 달린다.

요령성도 길림성도 광활하다. 흑룡강성으로 가는 곳도 광활한 대 평원, 몇 시간을 달린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는 모든 간판이 한글과 한문으로 병기되어 있고, 우리말을 하는 분을 수 없이 만나므로 타국 같은 기분이 안 들었다. 그러나 한때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전서의 병력이 주둔하며, 독립군 병력을 기르던 왕청汪淸현을 지나 몇 시간을 달려 흑룡강성에 이르니 한글을 병기한 간판을 볼 수 없다. 이제 정말 만리타국이란 기분이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에 강탈당하고, 독립을 위해 만주 일원에서 옛 조상 발해 땅과 고구려의 광활한 영도를 오가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의 고대사를 집필하며, 단군의 후예 '단일 백의민족'을 강조했다. 잠자던 민족의 의식을 일깨우며, 단합된 힘으로 침략자 일본에 저항하는 기운을 길렀다. 그래서 단일 백의민족의 의식은 우리 가슴 깊이 스며들어 꺼지지 않는 항일 운동의 불꽃이 되었다. 단일 백의민족이란 말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독립운동가 들이 심혈을 토해 외쳤으므로 삼천리강산에 깊이 심어졌다.

그러나 인류학자의 학설은 단일 민족이란 말에 이의를 단다. 한반도에는 두 개 이상의 종족이 모여 살았다 한다. 추위에 감내하며 살기위해 눈이 작은 북방계 기마민족과 눈이 큰 남방계 민족이 살았다. 건국신화로도 고구려 백제의 집권세력은 북방계 민족이다. 신라의 집권세력도 북방계다. 현존하는 신라의 왕릉의 유물과 최초 왕을 호칭하던 마립간麻立干이란 어휘로도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임이 짐작된다. 가락 김 씨는 이의 없이 남방계 후손이다.

같은 반도 안에서 마한, 진한, 변한으로 갈라졌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어지며 살았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 이은 고려조와 조선조는 북쪽으로 성을 쌓으며 넓혀 압록강 두만강을 확보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근세 바다 건너 왜족에게 한 때 국권을 침탈당했다. 국권을 침탈당했을 때 단일 백의민족이란 말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이제는 어둠의 터널을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비자를 받아 과경동포跨境同胞가 사는 요령성과 길림성의 압록 두만 두 강의 북쪽을 밟으며, 흑룡강성 성도인 하얼빈시로 향한다.

하얼빈 시는 ‘미래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우리의 선각자 안중근 의사가 31세 때, 1909년 10월 26일 9시20분경 그 원흉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를 러시아 의장대의 환영을 받는 기차역에서 사살한 곳이 있다.

하얼빈은 인구 천만의 흑룡강 성 중심 성도이다. 제정 러시아의 영향으로 개발한 시내에는 러시아 정교의 교회 건물이 있고, 러시아 풍의 건물과 러시아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 계획경제로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부담 없이 도시를 개발하니 규모 있고 옹졸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의 삶의 질이 통제되어 있다. 자유 민주체제의 시민의 삶의 질에 비해 뒤처져있다. 이제, 시장경제 경재의 원리를 도입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매년 10%이상의 경제 성장을 보이면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앞서 세계의 최 강대국이 된다고 한다. 중국은 56개 소수 민족을 포용정책을 쓰며, 모든 종족을 중국 국민으로 철저하게 다듬어 나가고 있다.

21세기 개성의 시대, 정보화 시대, 고 부가가치의 시대이다. 한반도 영내에서는 아직도 단일 민족이란 말에 심취되어 있다. 역사를 꾸민지 930여 회의 외침이 있었다. 많은 세월 수많은 인간들이 오갔다. 인간은 인간의 흔적을 남기며 살았다. 지금 농촌의 총각의 신부는 열에 두셋은 동남아에서 온 신부이다. 그들이 우리의 후손을 낳아 기른다. 그래도 단일 백의민족이란 말을 부담 없이 사용 할 것인가.

동족을 침략의 대상으로 보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야기한 자들이 요사이 전략적으로 접근해 ‘동일 민족’이란 말을 전술적으로 사용한다.

나라를 받치고 있는 것은 국민이다. 민족보다 국민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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