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논문/기행문
작성자 정호영 기자
작성일 2007-08-28 (화) 13:41
분 류 탐방기
   
(제2기)독립군 전적지 탐방기-독립군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를 찾아(1)-

(제2기)

광복청년아카데미 독립군 전적지 탐방기

 (국방일보 정호영 기자)

철기 이범석장군 기념사업 회의 광복청년 아카데미는 제2기 전국대학생 대표들을 모집하여 2007년 7월23일 독립군 전적지 탐방연수를 떠났다. 이번 탐방연수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떠나 중국 단동으로 상륙하여 북간도와 만주 일대를 육로로 횡단한 뒤 다시 배편으로 동해를 거쳐돌아온 8박9일간의 대장정이었다. 본지는 이번 독립군 전적지 순례를 밀착 취재,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연제한다.(편집자 주)

독립군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를 찾아(1)

대한민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일제에 의해 폐교된 독립군의 사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 옛 터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철기 이범석 기념사업회(회장 김정례)의 광복청년아카데미 학생들은 지난달 25일 8.15 광복62주년을 앞두고 중국 통화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옛 신흥무관학교 터전에서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이역만리에서 일제와 싸운 독립군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설립, 1920년 일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수천명의 항일 무장 독립군을 양성한 사관학교로 그동안 흔적조차 찾을수 없을 만큼 잊혀져 왔다가 87년만에 대한민국의 젊은 대학생들에 의해 지난날 애국 충정으로 항일투쟁을 벌였던 독립군 역사의 자취를 드러냈다.  

이번에 대학생들이 찾은 신흥무관학교 옛 터는 그동안 KBS(2002 년 8월31일 방영 역사스폐설)와 몇몇 학자들이 주장해 온 중국 통화시 광화현 고려촌의 옥수수밭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헌 고증과 여러가지 정황상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고려촌 주민인 유금용(劉金勇)씨는 “오래전 우리 마을이 생기기전 이 일대에 조선인이 세운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어릴적에 노인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며 “아마도 옥수수밭으로 둘러쌓인 이 부근일 가능성이 높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증언했다.

이날 전국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광복청년아카데미 회원들은 통화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이동한 뒤 경운기와 마차만 오갈수 있는 산간오지의 마을 입구 합니화 강을 건너 옥수수밭을 헤치면서 행군한 끝에 마침내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찾아내 감격의 의미를 더했다.

광복청년 아카데미 대학생인 함윤희(여. 고려대 4년)씨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와 싸웠던 독립군의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직접 찾아보게 돼 감격스럽다”며 “조국을 잃고 낯선 중국땅으로 와 이곳에서 훈련받고 만주벌판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독립투사들의 애국심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출신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했던 철기 이범석장군을 기념하는 사업회의 광복청년아카데미는 전국의 대학생 40명과 지원단 10명 등 50여명으로 구성, 독립군 전적지 탐방을 위해 지난달 23일 국립현충원에서 광복회장에게 신고한 뒤 31일까지 중국 단동과 북간도와 만주 일대를 순 례하는 대장정을 벌였다.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의미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독립군을 체계적으로 양성한 오늘날의 육군사관학교라 할 수있는 곳이다. 1911년 설립되어1920년 일제에 의해 폐교됐다. 신흥무관학교가 폐교된 가장 큰 이유는 일제와 벌였던 독립전쟁중 최고의 승리인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항일비밀결사단인 의열단의 활동과 무관치 않다.  

즉 만주일대의 항일투쟁에서 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 광복군까지 독립전쟁의 선봉에는 언제나 신흥무관학교가 낳은 정예 군인들이 있었다. 일본군으로 봐서는 신흥무관학교가 눈에 가시였던 셈이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린 독립군부대를 보면, 연해주의 대한독립군단, 블라디보스톡의 대한광복군정부, 만주의 대한독립군,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한국 독립군, 조선혁명군 등이 나온다. 이들 각 군부대들은 사상과 노선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조국독립이라는 목표만은 하나였다. 이 많은 독립군부대들은 대부분 신흥무관학교 출신에 의해 운영됐다.  

의열단장 김원봉,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임시정부 부통령 이동녕, 대한민국 초대부통령 이시영 등은 물론 무명의 독립투사들까지 약 3천5백명이 이곳을 거쳤다.  

신흥무관학교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전혀 받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학교에서 책임졌다. 토지며 건축비도 엄청나고 운영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한 독립운동가 가문의 헌신에 의해 해결됐다. 당시 돈 40만원, 지금 돈으로 6백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산을 기꺼이 내놓은 그들은 우당 이회영의 일가였다. 이회영의 손자가 바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다.   

이회영 일가는 정승판서만 아홉이 나온 당대의 명문가였지만 우당의 6형제들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집단 망명을 떠났다. 그들이 1910년 압록강을 건너 세운 곳이 바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였다. 당시 일제의 감시를 피하고 중국당국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강습소란 명칭을 붙였다가 이후 신흥중학교, 신흥무관학교라는 명칭을 두루 사용했다.

1919년 3. 1 만세운동 이후에는 젊은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대거 만주로 모여들었고, 1919년에서 20년 사이 한해에만 적어도 6백명에서 많게는 2천명까지 정예교육을 받은 독립군이 배출됐다. 신흥무관학교가 운영된 기간은 꼭 10년이었지만 신흥무관학교의 발자취는 그대로 우리 독립군의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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